내 나이 지천명이 될때까지 가끔씩 버릇처럼 읊조리게 되는..
아름다운 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왠지 끌리는 첫 귀절은 언제나 마음이 평온해 지면
흥얼거리게 된다,
지은이에 대해서도
이 시를 쓰게된 사연에 대해서도
잘은 모르다가 우연한 기회에
자세를 바로하여 다시금 이시를 접하게 된다.
가슴가득 퍼져오는 안타까운 감정의 흐름이 담긴
까닭모를 기인 여운이 남은 이 時를 다시 되뇌이며
한 시인과 아름다운 여류화가와의
낭만적인 너무나 낭만적인 그 느낌을
가슴에 가득 담아본다 <구름에 달 : 청향>

기욤 아뽈리네르(1880-1918)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으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미라 우리들의 사랑도 비슷한 동시대를 살았던 ‘까미유 끌로델’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났으나, 연인이었던 로뎅에게 집착과도 같은 사랑, 적대국의 남자와 결혼을 해서 전쟁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국에 갈수 없는 유랑자와 같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전쟁중 아폴리네르는 사망하고, 독일인 남편과의 이혼후 많은 사랑과 이별을 겪었으나 그러한 그녀가 젊은날 봄바람과도 같은 시절에, 꿈곁같이 나누었을 아폴리네르와의 밀어들. 나는 너의 아폴리네르… 하지만 유랑생활보다도 불행한 것은 그렇지만 죽음보다도 더 불행한 것은 + 마리 로랑생 +
프랑스 시인. 본명은 Wilhelm Apollinaris de Kostrowitzki.
"미라보 다리"의 시인 아뽈리네르는 폴란드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1880. 8. 로마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머니를 따라 남프랑스 지역을 전전하다 19세에 파리에 올라온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지만 뜨거운 문학적 정열로 여러 예술 운동에 참여하여 당시 전위예술의 중심 인물이 된다. 33세에 첫시집 Alcools(1913)을 내어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14년 1차 대전에 참전. 1916년 부상을 입고 제대한 후 파리로 돌아와 상징적인 이야기책 Le Poète assassine(The Poet Assassinated)를 내고, 이어 1918년에 전쟁의 이미지와 사랑의 번민에 가득한 새 시집 Calligrammes을 출간한다.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허약해져 같은 해 인플렌자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출생의 비밀이 평생의 콤플렉스로 작용하여 불우한 삶을 살았던 그는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여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1898년부터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나중에 유명해진 몇몇 젊은 화가들,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라울 뒤피', '파블로 피카소' 등과 친구가 되었다. 
'아폴리네르'는 불문학사에서 상징주의의 황혼기이며 모더니즘 혹은 초현실주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당대의 시대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문학으로 구현한 시인이었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 1883~1956)]
그녀도 '아폴리네르'처럼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력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한 유부남이었으나, 그녀의 어머니 '멜라니-폴린'과 이중생활을 하였다. "숨겨진 여자"가 된 어머니는 일체의 사회적 관계들을 끊은 채 고독하고 비밀스러운 생활을 영위하였다.
'로랑생'은 데생 학교에서 만난 '조르주 브라크'의 격려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욍베르 아카데미로 옮긴다. 1905년에는 바토-라부아르(Bateau-Lavoir)에 소개되어 '피카소', '막스 자코브'를 위시한 전위적 화가 및 시인들이 가난한 공동 생활을 하던 그곳에서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 Guillaume Apollinaire, André Billy et Marie Laurencin
사생아라는 공통점을 지녔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서로의 예술 세계를 잘 이해하는 정신적 반려가 되었다.
그들이 바토-라부아르에 출입하던 5년의 기간은 두 사람의 예술적 재능이 만개한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긴 시간을 사랑했지만, 서로의 개성과 여러가지 이유로 결별을 하게 된다.
그녀는 돌연 독일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하였다.
그녀와의 사랑, 그녀와의 이별을 아프게 노래한 것이 '아폴리 네르'의 대표작 '미라보 다리' 이다.

[마리 로랑생의 그림]
'로댕'은 '마리 로랑생'을 "야수파의 소녀" , 또 '장콕토'는 그녀를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서 덫에 걸린 작은 사슴'이라고 하였다.
외로움과 버려짐의 고통속에서도 그녀는 대담하도록 예쁜 분홍색을 고혹적으로 처리하여 그림들을 몽롱한 꿈속과도 같은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핑크 레이디'라고 불렸고, '작은 야수', '꽃뱀', '피카소와 루소 사이에서 춤추는 살로메' 등의 애칭도 가지고 있었던 마리 로랑생. 몽마르뜨르의 천재시인,'아폴리네르'로 부터 <미라보 다리>라는 시(詩)를 헌정받았던 여인.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끝내 거부했듯이 캔버스 위에서조차 남성들을 추방해 버렸고 모든 사랑을 스스로 망쳤다.
한 번 결혼했다 이혼했고 끝끝내 화폭위엔 환상적인 여자들만 그렸다.
소녀들, 처녀들, 그리고 여자 아이들과 왕녀들을....
그녀는 그토록 상처투성이의 비통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분홍색 속엔 운명의 신비한 미소가 있다.
그것은 우수의 투명성이다.
그 분홍색속엔 어떤 현실의 가혹함도 빼앗지 못한 영혼의 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짓밟힐수록 꿈같은 투명성을 얻는 영혼의 명징(明澄)함이라 할 것이다.
감정, 삶의 방식, 그리고 재능에서 독특한 인물이었던,
그녀의 예술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독창적인 것이었다.
"새로움을 창조한 이 시대의 위대한 발명가"라는 '앙드레 살몽'의 말처럼, 그녀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녀는 마치 동화속 주인공들처럼 꿈을 꾸듯 수채화를 그렸고,
또한 그녀가 소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도,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살아있어
그녀가 두려워하였던 잊혀진 여인으로 남지 않았다.
그녀는 '미라보 다리'의 여인으로
그녀가 그린 그림속의 여인들의 눈망울에
결코 잊혀질수 없는 여인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미라보 다리의 여인이라 불리웠으며,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알려진 그녀, 마리 로랑생.
아폴리네르가 그녀와의 이별후에 그리움으로 써내려 갔다는 ‘미라보 다리’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에 파리와, 세느강 그리고 이별의 낭만을 이야기 할 때면 함께 떠올리는 시이다.
마리 로랑생…
다만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흔히 알려졌으나, 그녀는 20세기초 피카소와 장 콕토들의 살롱에서 가장 환영받는 파리의 뮤즈였으며, 로댕으로부터 ‘야수파의 소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예술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화가였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나는 유약하게 부서져 버린 ‘까미유 끌로델’보다 이 생동감 넘치는 화가에게 알 수 없는 애정을 느끼곤 한다.
그녀는 온 유럽과 파리가 입체파와 야수파의 물결이 넘칠 때 독특한 그녀만의 화풍을 만들어낸 보기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온 시대가 인상주의 화풍에 넘쳐날 때, 크림트의 빈화파가 독특함과 새로운 화풍으로 그림예술의 다양성을 마련해주었듯,
모두가 한 방향으로 휠쓸려가는 사조가 만연한 시절에 그녀만의 감각적이며 유연한 화풍을 남겼다는 것은
대단히 인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화가란 당연히 남성이고 "여성 화가"는 희귀한 예외적 존재였던 시절에 살았다.
그녀의 예술 세계가 남성 화가들의 세계와 같은 척도로 평가될 수 없다 해서, 그녀의 재능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태어나면서 사생아라는 불운을 타고 났으나,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가 사생아라는 출신성분을 끝까지 극구 감추려 한 반면
그녀는 오히려 당당했었다 전해진다.
그리고 섬세하지만 유약한 본인의 정신상태를 이기지 못해 비참하게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친 것과는 대조가 된다.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나 서로의 예술세계가 만개할 무렵, 돌연히 그를 떠난 ‘마리 로랑생’은
아폴리네르를 떠나서 여러가지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건강히 가꾸어 나간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이듬해에는 독일사람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함으로써 그녀 조국에서조차 발붙일 수 없는
처치가 되고 만다.
겨우 조국에 돌아오는 것을 허락받게 되는 그녀…
그녀에게 항상 변함이 없던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
70세가 넘어 사망하기까지 그녀의 소망은 “나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이었다고 한다.
일생을 당당하며, 사랑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녀가 마음 한구석에 그런 의아심을 가지고 일생을 살았다니...
감정, 삶의 방식, 그리고 재능에서 그녀는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녀의 예술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독창적인 면이 있었음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에게 보여준다.
너는 나의 마리
세느강변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바람불면 귓가로 스쳐가는데…
이 미라보다리 아래
마르지 않는 그 강물은 흐르는데…
오늘도 내일도 흘러만갈텐데…
사랑하고 사랑하였던 나의 마리…
나 일생을 살아, 70세쯤 되면 과연 무엇이 회한으로 남을 것이며, 어떤 열정으로 살았는지 뒤돌아 볼 때,
가장 떠오르게 될 것이 무엇일까...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권태보다
그리고 슬픔보다도
왜 불행이 더 나쁜지를...
하지만 불행보다
더 나쁜 것은 아픔입니다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왜 아픔보다 버려짐이 더 나쁜지를...
하지만 버려짐보다도 더 나쁜 것은
외톨이가 되는 것입니다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외톨이가 되는것 보다 더 불행한 것을...
그것은 바로 유랑생활입니다
죽음이랍니다
바로 잊혀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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